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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 life, LPN

소심하고 끝없는 불안감이 가득한 집순이의 영어와의 사투

by 쵸코박스 2023.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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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영어를 잘하려면, 아니 어떤 제2외국어이든 잘 구사하려면, 적극적인 성격, 사회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플러스요인이다. 영어 향상법이라고 인터넷에 치면 유튜브이든, 구글, 네이버에서든 모두 한결 같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먼저 말을 걸어라, 틀리는 거 무서워하지 말아라 "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고 한 번에 성격을 바꾸는 건 쉽지가 않다. 오늘은 소심하고 불안감 많은 나의 성격으로 캐나다에서 먹고 살만큼 영어를 하게 된 경험, 실패담, 성공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영어와 나

영어가 써져있는 표지판

영어를 잘하려면 언어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거 없다. 나는  토종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30년 동안 수능을 보기 위해 학교에서 배웠던 영어 말고는 영어 하고는 일절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요즘 많은 영어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면, 미드를 보고 나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영어에 관심이 생기고, 쉐도잉을 통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던데, 나는 한 번도 영어로 된 영상을 보며 재밌다고 느낀 적도 없고 쉐도잉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에게 영어는 한국나이로 30살에 영어권 국가로 이민을 결정하면서 시작하게 된, 이민 준비물 중, 중요한 몇 가지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13년 전에 영어를 재미가 아니라 이민의 수단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캐나다에 이민 온 후 10년 동안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영어공부의 시작

영어를 재미있게, 즐겁게 공부했다면 더 빨리 늘었을지도 모른다. 왜,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거는 즐기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영어가 정말이지 너무도 어렵고, 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이민을 가기로 결정은 했고, 단기간이지만 어학연수도 가기로 했고, 다니던 직장은 그만두었고, 이미 벌려놓은 일들이 너무 많았었다. 물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포기할 용기조차 없는 소심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민 결정도 너무 웃긴 게, 내가 엄청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호주에 여행 다녀온 친구가 '간호사들이 살기 좋더라'라고 해주었던 이야기에 순간적으로 홀려 며칠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었고, 반짝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며 당연히 "No"라고 하겠지 생각하며 남편에게 크게 기대 안 하고 말했는데, 일주일을 고민하던 남편이 "Yes"라고 해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그냥 일사천리로 모든 게 진행이 되어버렸고, 나는 어느새 단기 어학연수를 떠나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실패담

단기로 떠난 필리핀 어학연수에서 처음으로 한것은 레벨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리스닝, 문법, 스피킹, 어휘력으로 해서 4가지 분야를 테스트를 받았는데, 수능시 달달 외웠던 단어 덕분에 어휘력은 좋은 점수가 나왔지만 나머지 세분야는 정말 형편이 없었다. 특히 리스닝은 0점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서, 생각보다 내가 영어를 정말 못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2달 필리핀 어학연수 뒤 바로 이어 6개월짜리 호주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어학연수 뒤 신청하려고 했던 호주이민을 위한 이민법이 변경되어 6개월 내에 아이엘츠 아카데믹 6.5 이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었다. 나의 영어레벨은 초급이었는데, 무슨 수로 그 점수를 낼 수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했고, 당장 아이엘츠 시험을 접수하러 가는 길에, 길을 물어보는 것조차 나는 영어로 할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 중급반에 들어간 랭귀지 스쿨에서, 돌아가면서 스피킹을 해야 할 때도, 나는 입이 떨어지지 않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일이 생겼고, 나는 너무 창피하고 막막해서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랬다. 소심하고,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는 성격도 아니고, 조금이라도 틀릴까 봐 걱정하는 그런 성격인 나는, 영어가 향상되는 그 과정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고 버거웠다. 우여곡절 끝에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도, 옆집사람이 말 거는 게 싫고, 전화로 무언가 일을 봐야 할 때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냥 이메일로 보내곤 했다. 잠깐 레스토랑에서 서버로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손님 말을 잘못 알아듣는 실수를 몇 번이나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고, 나는 왜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으로 나 스스로를 끌고 와 고생하며 사는지 후회하곤 했다. 그리고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성공담

영어를 아직도 잘 못해서 성공담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처음에 영어 리스닝에서 0점을 받았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그래도 캐나다에서 LPN으로 먹고살고 있으니, 먹고살 만큼은 늘었나 싶다. 여기까지 오면서, 영어가 향상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효과가 있었던 것은 정말 죽어라고 하기 싫었던 아이엘츠 공부였다. 어학연수 학원에서 본 레벨테스트 리스닝 0점에서 아이엘츠 리스닝 8점까지 2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영어 문외한이던 나는 영어로 듣고 말하고, 쓰는 법을 배워나갔다. 누군가는 그 향상되는 과정이 즐거워서 더 열심히 했다고 하던데, 나는 내 영어가 향상되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도 확신이 없었고, 12시간을 앉아서 공부하면서 끝없는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아이엘츠 시험을 단기간에 6.5로 올렸어야 했는데, 호주이민에서 캐나다 이민으로 바꾸고,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아서 가는 것으로 바꾸면서, 나는 6.5보다 더 높은 점수 7.5가 필요했었다. 거의 10번을 넘게 시험을 보면서, 이번에도 안 되었구나라는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영어에 '영' 자만 들어도 토 나오게 싫었었다. 그래도 그 싫음을 참고 계속했더니 10번 만에 필요한 점수가 나왔다. 그러고 나서 내 영어는 이제 좀 쓸만한가 싶은 마음으로 캐나다에 왔다. 그리고, 밴쿠버 관광을 며칠 하기로 했는데, 나는 그때 이미, 나의 영어는 아직도 저 바닥임을 현저히 깨닫게 된다. 그동안 시험영어만 해왔던 지라, 현지에 오니 정말 더럽게도 안 들리고, 말이 안 되었었다. 현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들도 잘 안 들리고, 레스토랑, 커피숍에 가서 주문할 때도 못 알아들은 게 많고 그랬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이제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들은 귀에 와서 탁탁 꽂힌다. 레스토랑 커피숍에서 주문할 때는 내가 메뉴이름을 몰라서 못 알아듣는 거 말고는 대부분 알아듣는다. 물론, 사람마다의 악센트라던지, 말의 속도 차이 때문에 가끔 안 들릴 때도 있지만, 10년 전에 비하면 많은 향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는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소심한데다가, 집순이이다. 언어를 배우려면 당연히도 타깃으로 하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문화도 배우고, 틀려도 자꾸 말해보고 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언어를 배우는 자세이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내내 시달렸고, 그러한 성격 때문에, 영어권 국가에 살아도, 영어를 써먹고, 들을 수 있는 기회들이 널려있는 데도 불구하고, 영어가 향상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아이엘츠 점수가 그 정도면 영어 실력이 괜찮겠네..라고 이야기 하지만, 나의 경험상 시험영어와 실전영어는 달랐다. 완벽하게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탑재되어있는 이들이 나는 가장 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간의 고생 끝에, 어찌어찌 영어를 사용하며 돈을 벌고 살아가고 있다. 나의 영어는 정말 별로이고, 매일 실수투성이이지만, 그래도 캐나다에서 LPN으로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이다.  혹, 나처럼, 영어가 무섭고 두려워서 망설이고 있다면,  나 같은 사람도 했으니, 당신은 당연히 할 수 있음을 믿고 한번 도전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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